패션생산·공급망

중국 패션계의 세대교체: 창의성보다 ‘재고와 현금 흐름’을 먼저 고민하는 실무파 디자이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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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패션위크, ‘표현’ 대신 ‘경영’ 택한 실무형 디자이너 브랜드의 부상

중국 상하이 패션위크를 통해 중국 패션 산업을 이끄는 신진 디자이너들이 과거의 화려한 스타일 중심에서 벗어나 실무 경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주의 세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중국 내수 시장의 흐름과 브랜드 운영 방식의 변화는 글로벌 경쟁력을 고민하는 한국 패션 업계에도 중요한 관찰 포인트가 됩니다.

스타일보다 경영, 중국 패션계의 실무형 세대 등장

폭발적인 성장이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은 스타일 자체보다 내실 있는 경영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상하이 패션위크 무대에 서는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제 ‘자기표현’이나 ‘스타일’이라는 단어 대신 ‘비용’, ‘재고’, ‘유통망’, ‘현금 흐름’과 같은 현실적인 경영 용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들 신세대 디자이너들은 브랜드 설립 초기부터 시장의 침체와 이성적인 소비 흐름을 직면하며 완충기 없는 성장을 강요받았습니다. 과거 선배 세대들이 누렸던 빠른 확장기의 혜택을 보지 못한 채, 트래픽 비용과 생산 비용 상승, 그리고 높아진 유통 문턱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브랜드 운영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상하이 패션위크, 비즈니스 검증의 장으로 진화

세계적인 패션 소비 도시인 상하이는 브랜드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곳인 동시에 가장 혹독한 소매 환경과 까다로운 소비자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상하이 패션위크는 이제 단순히 쇼를 보여주는 장소를 넘어, 수주회인 ‘MODE’ 등을 통해 직접적인 판매 피드백과 브랜드의 생존 가능성을 확인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신세대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큰 숙제는 ‘디자인 역량’을 어떻게 ‘운영 역량’으로 전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대량 생산 체계를 어떻게 구축하며 실제로 누가 이 옷을 살 것인지를 첫날부터 고민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AO YES와 글로벌 스탠다드의 결합

2022년 설립된 ‘AO YES’는 동양적 미학을 시각적 아이덴티티로 삼아 빠르게 성장한 대표적인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설립 기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2025년 스페인의 패스트 패션 거인인 자라(ZARA)와 협업을 진행하며 중국 시장 내 현지화 마케팅의 핵심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보그(Vogue) 출신의 오스틴 왕과 기술적 전문성을 가진 리우옌송이 설립한 AO YES는 초기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실제 대량 생산 가능한 샘플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들은 개인 자금으로 브랜드를 시작하며 원단 공급업체 및 가공 공장과의 효율적인 소통을 통해 적정 비용 내에서 창의적인 디자인을 양산 가능한 공정으로 바꾸는 데 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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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XORA와 TIPSY VISION의 시장 적응기

런던 패션 칼리지 출신들이 설립한 ‘VEXORA’는 상하이 패션위크의 수주회인 MODE에서 현실적인 시장의 벽을 실감했습니다. 초기 설정했던 3,000위안 이상의 가격대가 너무 높다는 바이어들의 피드백을 받은 후, 이들은 창의성이 브랜드 운영의 시작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고 제품 구조와 가격대를 재편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유학 중 창업 궤도에 오른 ‘TIPSY VISION’의 우하오양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초기에는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했으나 제품 안정성 부족과 부진한 판매 실적을 경험한 후, 2024년 가을/겨울 시리즈부터 시장 트렌드와 바이어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곧바로 수주량 증가라는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상하이 인프라를 활용한 성장과 미래 전략

디자이너들은 상하이가 제공하는 밀도 높은 유통 체계와 정보 흐름이 브랜드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오프라인 편집숍에서의 실시간 시장 조사와 패션 관계자들과의 직접적인 네트워킹은 신규 브랜드가 채널을 확보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TIPSY VISION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26년 가을/겨울 상하이 패션위크에서 첫 단독 런웨이를 가질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신진 디자이너들은 ‘레이후(Labelhood)’나 ‘튜브 쇼룸(Tube Showroom)’ 같은 플랫폼을 통해 대중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며 브랜드를 알리고 있습니다. VEXORA는 바이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격대가 낮은 선구적인 스타일과 높은 가격대의 공예적 라인을 분리하는 층위화 전략을 도입했으며, 현장 수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재고 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생산 리듬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중국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창의성이라는 이상보다 생존을 위한 운영 효율성에 집중하는 모습은 패션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합니다. 상하이 패션위크를 기점으로 한 이러한 실무형 변화는 향후 중국 브랜드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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